설마 이 글을 보는 분들 중에 베토벤의 3번 교향곡 '영웅'을 모르는 분은 없을 것이다. 영웅 교향곡은 음악적으로나 음악사적으로나 매우 중요한 작품으로 역사상 최고의 교향곡을 논할 때 항상 '합창 교향곡'과 1,2위를 다투는 명작이다. 원래 나폴레옹에게 이 교향곡을 바치려고 했다가 그가 황제가 됐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폴레옹의 이름이 적혀 있는 악보의 표지를 찢어버렸다는 이야기는 정말 유명하다.
워낙 유명한 곡이니까 작품 분석이나 이 곡과 관련된 자세한 사항은 나무위키 등의 사이트를 참조하기 바라며(참고로 나무위키에 있는 '영웅 교향곡' 내용의 절반 이상은 내가 기여한 것이다) 여기서는 이 교향곡과 관련된 사소해 보이지만 사소하지만은 않은 이야기를 해보자. 이 글의 관심사는 영웅 교향곡 1악장의 맨 마지막 클라이맥스 부분의 트럼펫 연주에 관한 것인데, 이 사안은 베토벤 관현악곡의 금관악기 연주 문제 전반에 대한 예시에 해당되므로 연주자와 감상자 모두에게 나름 중요하다.
1. 두 가지 버전의 트럼펫 연주
영웅교향곡 1악장의 피날레는 베토벤답게 모든 관현악기가 총동원되서 강력하게 몰아친 후에 힘차게 마무리된다. 이 때 트럼펫의 역할이 좀 특이한데, 지휘자에 따라 트럼펫 연주 방식이 두 가지로 나누어진다. 백문이 불여일청, 일단 들어보고 이야기하자. 첫번째는 카라얀/베를린필의 영웅교향곡 1악장 피날레이다.
이번에는 아르농쿠르/유럽 챔버 오케스트라가 같은 부분을 연주한 것을 들어보자.
두 연주의 차이가 명확하게 들리는가? 분명 같은 곡인데 카라얀의 베를린필은 투티(총주) 부분에서 트럼펫이 1주제를 제대로 연주하면서 계속 분위기를 이끌고 가는 반면 아르농쿠르의 유럽 챔버 오케스트라는 트럼펫이 1주제를 연주하는 듯 하다가 사라져 버린다. 이 총주는 1악장 피날레에서 확실하게 분위기를 잡는 매우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에 우렁찬 음향을 가진 트럼펫의 존재감은 필수이다. 따라서 관련 지식을 배제하고 오직 음악적인 관점에서만 보면 카라얀의 연주가 훨씬 효과적으로 들린다. 그런데 아르농쿠르는 왜 비상하려던 트럼펫을 갑자기 꺼뜨리는 걸까?
문제는 베토벤이 쓴 악보에 카라얀이 아니라 아르농쿠르처럼 연주하라고 되어 있다는 것이다. 악보를 보면 이 부분에서 트럼펫이 등장해서 1주제를 연주하는 듯 하다가 갑자기 1옥타브 아래의 음을 연주하면서 주저앉고 상대적으로 음량이 튀지 않는 호른과 목관악기들이 연주를 이어가는 식으로 되어 있다.
그러니까 카라얀의 연주는 음악적으로 멋있기는 한데 악보를 따르지 않았다는 문제가 있고 아르농쿠르의 연주는 악보에 충실하기는 한데 음악적인 효과가 약하다는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애초에 베토벤은 왜 이렇게 작곡을 했을까? 우리가 아는 베토벤은 이렇게 김빠지는 음향을 추구하는 작곡가가 절대 아닌데;;;;;
2. 베토벤 시절의 트럼펫
이렇게 작곡된 주된 이유는 베토벤 당시에 사용되었던 트럼펫의 악기적인 한계 때문이었다. 베토벤 시절의 금관악기는 오늘날과 같이 밸브나 피스톤이 달려있지 않고 오직 입술과 호흡의 조절만으로 음을 내야 했다. 이처럼 음조절 장치가 없었기 때문에 그 시절의 금관악기는 내추럴(natural)이라는 표현을 붙여서 내추럴 호른, 내추럴 트럼펫 같은 이름으로 부른다. 이 내추럴 금관악기는 피아노나 현악기처럼 모든 음을 다 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특정 음을 기준으로 그 음의 배음만 낼 수 있었으며 조성을 바꿀 수가 없었다. 그래서 각 조성별로 별도의 크룩(crook, 교체관)이 준비되어 있었으며 연주자는 조성이 바뀔 때마다 해당 조성에 맞는 크룩으로 바꿔 끼워야 했다. 더 자세히 들어가면 매우 복잡하니 일단 여기까지만 이야기하도록 한다.
그나마 내추럴 호른은 입구를 손으로 막는 식으로 좀더 다양한 음을 낼 수 있었지만 내추럴 트럼펫은 얄짤 없이 정해진 음만 낼 수 있었다. 그래서 당시에 사용되었던 내추럴 트럼펫으로는 이 1악장 마지막 클라이막스에 등장하는 1주제 선율을 끝까지 연주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밸브와 피스톤 등의 음조절장치가 부착된 금관악기는 베토벤 사후에 개발되서 19세기 중후반부터 본격적으로 쓰였다.
3. 가필 연주의 등장
이런 사정은 십분 이해하더라도 어쨌거나 오늘날 클래식팬 입장에서는 1악장 피날레 부분의 트럼펫 운용이 상당히 아쉬운 것은 사실이다. 위의 아르농쿠르의 연주를 들어보면 알겠지만 그냥 악보대로 연주하면 확실히 뭔가 어색하다. 물론 베토벤이 진짜 악기의 한계 때문에 저렇게 작곡했는지 아니면 나름의 이유가 있어서 저렇게 작곡했는지는 확실히 알 수 없다. 다만 이와 같은 금관악기의 연주 문제는 1악장 피날레뿐만 아니라 3번 교향곡 여기저기에서 나타나고 (트럼펫보다는 사정이 좀 낫지만) 호른 파트에서도 만만찮게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당시 악기의 제약이 작곡에 영향을 준 것은 어느 정도 분명해 보인다.
이런 이유 때문에 밸브가 달린 트럼펫이 본격화된 19세기 중반 이후에는 트럼펫이 마지막 클라이막스 부분에서 카라얀의 연주처럼 1주제를 제대로 연주하도록 가필하는 것이 일반화되었다. 가필을 한 지휘자들은 영웅교향곡이 너무 시대를 앞서간 작품인 탓에 당시 악기 수준이 이 곡의 혁신성을 제대로 따라가지 못했다는 점을 연주할 때 반영해야 된다고 주장한다. '당시 베토벤에게 좀더 좋은 트럼펫이 주어졌다면 분명히 이렇게 작곡했을 것이다' 라는 것.
많은 지휘자들은 이런저런 명분으로 트럼펫 뿐만 아니라 호른 파트까지 가필을 해서 연주를 했으며 특히 구스타프 말러같은 지휘자는 아예 금관 파트 전체를 거의 개작 수준으로 뜯어 고쳐서 연주했다. 애초에 말러는 다른 작곡가의 곡을 지휘할 때 각종 편곡과 개작을 일삼았던 것으로 악명이 높았는데 베토벤의 교향곡을 지휘할 때도 예외가 아니었다.
이처럼 가필을 해서 연주하는 추세는 20세기 후반까지도 계속 되었다. 카라얀뿐만 아니라 20세기 중후반까지 활약했던 지휘자들은 예외없이 1악장 피날레의 트럼펫 연주에 가필을 적용했으며 심지어 '악보 지상주의자'였던 지휘자 토스카니니조차도 이런 식으로 연주했다.
이처럼 관행으로 여겨졌던 금관악기 가필이 제동이 걸린 것은 '작곡가의 악보와 작곡가 당시의 연주법에 충실하게 연주하자'는 시대 연주의 철학이 본격적으로 대두된 1980년대 부터였다. 훌륭하게 연주한다는 명목으로 지휘자가 임의로 악보나 악기 편성을 고치지 말고 작곡가가 살았던 시기의 시대적 특징과 한계를 그대로 반영해서 연주하자는 것. 이와 같은 시대 연주 분위기가 우세해지면서 아르농쿠르처럼 음악적 효과를 희생하면서도 악보에 충실하게 연주하는 지휘자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래서 영웅교향곡을 비롯한 베토벤의 관현악곡 연주는 1980년대를 기점으로 양상이 상당히 달라지게 되며 21세기 이후에는 가필을 하지 않는 연주 경향이 확실히 우세해졌다. 유튜브 등에서 1990년대 이전에 녹음된 베토벤 교향곡 연주 음반과 21세기 이후에 녹음된 연주 음반을 비교해서 들어보면 바로 차이를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21세기 이후에도 마리스 얀손스, 다니엘 바렌보임, 주빈 메타처럼 시대 연주 경향을 따르지 않고 가필을 고수하는 지휘자도 꽤 있다.
4. 그럼 어떤 연주가 제대로 된 연주인가?
사실 이 금관악기 연주의 문제는 영웅교향곡 뿐만 아니라 베토벤의 모든 교향곡과 관현악곡 전반에서 나타나고 있으며 이 영웅교향곡 1악장의 피날레는 하나에 예시에 불과하다. 5번 운명 교향곡이나 9번 합창 교향곡 등에서도 만만찮은 금관악기 가필 논란이 있는데 기회가 되면 다뤄볼 생각이다.
좀더 범위를 넓히면 베토벤과 동시대 또는 한세대 뒤의 작곡가들(예를 들면 슈베르트나 베를리오즈)의 관현악곡을 연주할 때도 이런 금관악기 연주 문제가 종종 나타난다.
그럼 이런 문제가 발생했을 때 어떻게 연주해야 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당연히 없다. 애초에 가필을 할 것이냐 악보를 그대로 따를것이냐는 연주 철학의 문제이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떻게 연주를 할 것인지는 철저하게 지휘자의 몫이고 어떤 연주를 감상할 것인지는 철저하게 클래식 팬의 몫이다. 개인적으로는 가필된 영웅교향곡과 원전 그대로의 영웅교향곡 연주를 모두 좋아한다. 다만 만약 내가 영웅교향곡을 지휘한다면 가필보다는 악보 그대로 연주하는 것을 선택할 것 같다. 이유는? 나같은 사람이 어떻게 감히 베토벤의 악보를 고친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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