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음악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3번 c단조 Op. 37이 특별한 음악인 이유

파죨리 클래식 2024. 11. 24.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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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팬 중에 베토벤의 3번 피아노 협주곡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최근에 이 곡이 특별히 주목을 받은 적이 있었다. 2022년 반클라이번 콩쿨에 참가한 만 18세의 피아니스트 임윤찬은 완벽한 기교와 표현력에 더해 거장급의 작품 해석력까지 보여주면서 우승은 물론이고 청중상, 스미스 특별상까지 휩쓸면서 전세계 클래식 팬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 때 임윤찬이 결선에서 연주한 곡이 바로 이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3번이었다.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3번 c단조 - 마린 알솝 지휘, 임윤찬 피아노( 2022년 반클라이번 콩쿠르 결선 연주)

 

이 피아노 협주곡 3번은 출판된 이후부터 꾸준히 사랑을 받았으며 21세기 현재에도 이 세상 모든 피아노 협주곡 가운데 가장 자주 연주되는 곡이다.  이처럼 1급 연주자들이 너도나도 연주하는 곡이기 때문에 신예 연주자가 이 곡으로 주목을 받기는 정말 어려운데,  이런 상황에서 임윤찬의 반클라이번 콩쿨 결선 연주가 주목을 받았다는 것은 그만큼 임윤찬이 보여준 역량이 뛰어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처럼 이 곡의 인기는 대단하지만 인기나 작품성과 별도로 이 곡의 음악사적인 가치는 의외로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냥 베토벤의 훌륭한 피아노 협주곡 중 하나로만 인식되고 있다. 이제부터 이 3번 협주곡이 특별한 이유에 대해 알아보자. 

1. 작곡 과정 

베토벤은 원래 30살인 1800년에 이 3번 협주곡을 완성해서 1번 교향곡과 같이 초연을 하려고 했다. 하지만 당시 이 곡은 1악장 일부만 작곡된 상태였기 때문에 결국 연주되지 못했다. 이로부터 3년이 지난 1803년 4월 5일 테아터 안 데어 빈에서 작곡자 본인의 독주로 3번 협주곡의 초연이 이루어졌는데, 이 때  2번 교향곡 및 오라토리오 '감람산의 예수 그리스도(Christus am Ölberge)'와 같은 대규모 작품들도 함께 초연되었다. 이 공연이 크게 성공을 거두면서 베토벤은 상당히 큰 돈을 벌었다고 한다. 


그런데 사실 1803년의 초연때에도 이 3번 협주곡은 제대로 완성되지 않은 상태였다. 1803년 4월 5일의 초연때 악보를 넘겨주는 역할을 했던 작곡가 이그나츠 폰 사이프리트(Ignaz von Seyfried, 1776~1841)에 의하면 당시 3번 협주곡 악보에서 피아노 독주 파트는 악보가 거의 비어있다시피 했으며 몇몇 부분에 오직 베토벤 본인만 알아볼 수 있는 불가사의한 기호가 붙어 있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공연 당일까지도 악보를 제대로 적을 시간이 없어서 몇몇 중요한 부분에 자신만 알아볼 수 있는 연주기호를 표시해 해놓고 다른 부분은 모두 즉흥으로 연주한 것이다. 사실상 악보를 넘겨줄 필요도 없었던 것. 당시 베토벤의 즉흥 연주 능력은 빈에서도 유명했는데, 어떤 연주회에서 피아노 협주곡을 연주할 때 카덴차를 즉흥으로 30분 넘게 연주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ㄷㄷㄷ

그렇다고 해서 이 곡이 시간에 쫓겨 날림으로 연주된 것은 아니었다. 이 곡의 리허설이 무려 7시간에 걸쳐 진행됐다고 하는데, 아마 피아노 파트가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관현악이 피아노와 제대로 타이밍을 맟춰서 들어오고 나갈 수 있도록 이런저런 요구사항이 전달되고 약속이 만들어졌을 것이다. 

여튼 이렇게 베토벤이 즉석으로 연주를 한 탓인지 4월 5일 연주회 자체의 대성공과 별도로 이 3번 협주곡에 대해서는 곡이 산만하다 또는 너무 장황하다는 평가가 있었다. 이 곡이 제대로 된 악보로 연주된 것은 초연 이후 1년이 지난 1804년 7월이었는데 이 때 베토벤 본인은 지휘를 담당했고 피아노는 제자였던 페르디난트 리스(Ferdinand Ries, 1784-1838)가 맡았다. 초연 때 평이 엇갈렸던 것과 달리 이 두 번째 연주는 호평 일색이었고 베토벤 본인도 이 곡의 완성도에 매우 만족했다고 한다.

 

두 번째 연주 직후에 출판도 이루어졌는데 특이하게 루이 페르디난트 폰 프로이센 왕자(Prince Louis Ferdinand of Prussia)에게 헌정되었다. 1804년 당시 프로이센 왕자 루이 페르디난트는 프랑스와의 전쟁에 참여해서 공을 세운 유능한 군인이자 뛰어난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로 명성을 날리고 있었는데 베토벤이 그의 음악적 능력에 대한 존경의 의미로 이 곡을 헌정한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다재다능했던 청년 루이 페르디난트는 안타깝게도 2년 후인 1806년 34살의 젊은 나이로 전쟁터에서 전사하고 만다. 

피아노 협주곡 3번 초판 표지 - 루이 페르디난트에게 헌정한다고 되어 있다



2. 음악사적으로 이 곡이 특별한 이유 

앞서 보았듯이 이 곡은 1800년에 초연 예정이었지만 3년이나 더 지나서 초연이 되었다. 이 곡이 특별해진 것은 이 3년이 베토벤의 인생에서 매우 중요한 시기였기 때문이다.  1800년 당시 베토벤은 빈에서 촉망받는 젊은 작곡가이자 연주자로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었는데 이때 갑자기 예상치 못했던 불행이 찾아오게 된다. 바로 이유를 알 수 없는 귓병이 시작된 것이다. 

하필 음악가에게 귓병이라니! ㅠㅠ 그는 가족과 지인들에게 이 사실을 비밀에 붙이고 유명한 의사들을 찾아다니며 치료를 시도해 보았으나 당시 의료기술의 한계로 인해  누구도 베토벤의 청력을 회복시키지 못했으며 오히려 상태는 점점 악화되었다. 상심한 베토벤은 삶의 희망을 버리고 자살할 생각까지 했으며 1802년 유명한 하일리겐슈타트의 유서를 쓰기도 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그는 이대로 죽을 생각이 없었다. 용기를 되찾은 베토벤은 이제부터 누구도 쓰지 못한 새로운 음악을 쓰겠다고 다짐했다. 이런 일련의 육체적,정신적 고통을 겪은 후 1802년 후반기부터 흔히 영웅시대(Heroic Age)라고 불리는 베토벤의 제 2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1803년의 베토벤


그래서 1803년에 다시 씌어진 3번 피아노 협주곡은 이전에 씌어진 곡과는 상당히 다른 곡이 되었다. 이 곡은 ‘작곡가 자신을 위한 협주곡(Komponistenkozert)’의 효시격인 작품으로 평가받는데, 이전까지의 베토벤(및 다른 작곡가들)의 음악이 주문자나 청중들의 요구와 취향에 맞추어 작곡되었던 반면 이 곡은 본격적으로 작곡가 본인의 음악성과 내면세계를 반영하고 있으며 청중들에게 오히려 작곡가의 의도를 파악하라는 요구를 하고  있다. 이와 같은 베토벤의 작가주의적 성향은 이후 유럽 음악의 패러다임 자체를 바꾸어 버렸으며 이런 패러다임의 변화는  2년 뒤에 씌어진 교향곡 3번 '영웅'에서 본격적으로 만개하게 된다. 

3. 3번 협주곡의 음악에 대해 

 

사실 이 3번 협주곡에 사용된 음악수법 자체는 이후에 씌어진 피아노 소나타 21번 '발트슈타인'이나 영웅 교향곡처럼 혁명적이지는 않다.  물론 이 작품에서도 이미 베토벤의 개성과 특유의 똘끼가 충분히 드러나고 있지만 그래도 아직 전통의 틀을 완전히 벗어던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아무리 급진적인 변화라도 최소한의 준비 기간은 필요한 법. 영웅 교향곡이 베토벤 영웅시대의 본격 개막을 선언한 작품이라면 이 3번 협주곡은 베토벤의 영웅시대의 도래를 예언하는, 일종의 예고편에 해당되는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음악적으로  제대로 이야기하면 살펴볼게 매우 많은 작품이지만 너무 자세하게 이야기하면 재미가 없으니 최대한 간단하게 적고 넘어가겠다. 이 3번 협주곡은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을 비롯한 다른 협주곡까지 포함해서 유일한 단조(c단조) 협주곡이고 관현악은 통상적인 2관 편성에 팀파니가 추가되어 있다.

(1) 1악장 - 알레그로 콘 브리오 
소나타 형식을 가진 악장으로 단조 악장답게 분위기가 시종일관 무겁게 진행된다. 초반에 현악기가 1주제를 연주하고 관악기가 가세하다가 바이올린과 클라리넷이 2주제를 연주한 후에  피아노가 본격 등장하는데, 처음 등장할 때 상행하는 음계로 등장하는게 인상적이다.  전개부와 재현부에서는 관현악과 피아노의 티키타카가 자주 일어나기 때문에 연주자와 관현악의 호흡이 매우 중요하다. 초연 때 리허설을 7시간씩 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마지막에 카덴차가 등장하고 코다로 끝을 맺다. 1악장의 카덴차는 이야깃거리가 많은데, 아래 내용을 참조하기 바란다.

베토벤이 작성한 1악장 카덴차


(2) 2악장 - 라르고 
2악장은 겹세도막 형식으로 되어 있으며 특이하게 메인 조성인 c단조와 관계조가 아닌 마장조로 전환되고 분위기도 1악장과는 확연히 다르다.  제1부는 피아노에 의해 시작되고 시종일관 조용하게 흘러간다.  제2부는 제1바이올린의 연주로 시작되고 피아노에 의한 아라베스크풍의 장식적인 프레이즈와 관악기와의 얽힘이 계속 되며, 점점 깊은 경지의 세계로 들어간다. 3부는 1부가 재현되면서도 그대로 연주되지 않고 조금씩 변주가 된다. 짧은 카덴차 이후에 음악이 계속 약해져가다가 갑자기 강하게 끝맺는 베토벤 특유의 종지를 보여준다. 

(3) 3악장 - 론도 알레그로
2악장 처럼 피아노가 먼저 연주를 시작하고 이어 오케스트라가 반응한다.  대체로 피아노가 이끌고 오케스트라가 따라가는 느낌을 준다. 후반부에는 피아노 독주의 짧은 카덴차를 선보인 후 속도가 점진적으로 느려지고 소리도 작아지다가 갑자기 프레스트로 속도를 최대치로 끌어올리면서 마무리한다. 

4. 1악장의 카덴차에 대해 

 

이 특별한 3번 협주곡에서도 1악장의 카덴차는 정말 특별한데, 베토벤 본인을 비롯한 많은 작곡가와 연주자들이 이 1악장의 카덴차를 작성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카덴차가 범람하는 것은 그만큼 이 곡이 작곡된 이후부터 큰 인기를 누렸다는 방증이다. 이 곡의 카덴차를 작성한 대표적인 인물로 클라라 슈만, 프란츠 리스트, 이그나츠 모셸레스, 베드르지흐 스메타나, 샤를 발랑탱 알캉 등이 있으며 20세기 이후에도 파질 세이, 빌헬름 켐프, 마르크-앙드레 아믈랭 등의 피아니스트들이 독자적인 카덴차를 작성했다.  

 

21세기 현재 연주에서는 베토벤 본인의 카덴차가 가장 많이 활용되지만 다른 연주자들의 카덴차가 활용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 중에 알캉의 카덴차는 특이하게 베토벤의 5번 교향곡 '운명'의 4악장의 선율을 활용하고 있는데, 꽤 인상적인 카덴차이지만 연주시간이 6분이 넘고 알캉 특유의 양손 트레몰로 등으로 인해 연주자의 체력소모가 심한 탓에 자주 활용되지는 않는다. 알캉은 심지어 카덴차 작성에 만족하지 못하고 아예 1악장 전체를 피아노 독주용으로 편곡했다. 

알캉이 피아노 독주용으로 편곡한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3번 1악장 - 후반부의 카덴차를 유심히 들어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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