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음악

2002년에 발표된 쇼팽의 전주곡 27번 '악마의 트릴'

파죨리 클래식 2024. 11. 10.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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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에 2024년에 발견된 쇼팽의 잃어버린 왈츠 a단조 왈츠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 참에 2002년에 발표된 쇼팽의 잃어버렸던(?) 전주곡 eb단조에 대해서도 알아보자.

 

200년만에 발견된 쇼팽의 '잃어버린 왈츠'

1. 2024년 미국 뉴욕에서 발견된 쇼팽의 왈츠 a단조 쇼팽이 20대 초반에 쓴 것으로 추정되는 왈츠가 200여년 만에 미국 뉴욕 박물관에서 발견됐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2024년 10월 27일(현지시

classic.fazioli72.com


1. 2002년에 '발표'된 전주곡

2024년에 발견된 a단조 왈츠와 2002년에 발표된 이 eb단조 전주곡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닿아 있다. 일단 두 곡의 악보가 똑같이 뉴욕에 있는 박물관인 '모건 라이브러리 앤 뮤지엄'에서 발견되었다. 그리고 두 곡을 쇼팽 곡으로 확인하고 연주 가능한 수준의 악보로 정리한 사람도 똑같이 펜실베이니아 음대 교수이자 쇼팽 전문가인 제프리 칼버그(Jeffrey Kallberg)이다.  이 곡에 대한 글을 쓰기로 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실 이 전주곡의 자필악보 자체는 1980년대에 발견되었다. 문제는 악보의 상태가 거의 읽을 수 없는 수준이었기 때문에 20년 넘게 해독(?)이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제프리 칼버그의 피나는 노력에 의해 2002년에 드디어 연주 가능한 버전으로 악보가 복원되었. 그래서 2002년에 '발표되었다'라고 표현한 것이다. 이 곡이 발표되기 전까지 쇼팽이 작곡한 전주곡은 유명한 op. 28의 24전주곡, op. 45의 c#단조 전주곡, 유작으로 발표된 A♭ 장조의 전주곡 등 모두 26곡이 있었다. 그래서 이 전주곡에는 27번이라는 기호가 붙었다.

(뉴욕타임즈의 관련기사) 

왜 해독에 20년이나 걸렸는지 아래에 있는 악보 원본을 보면 바로 느낌이 올 것이다. 거의 낙서 수준으로 알아보기 힘들게 작성되어 있기 때문에 어지간한 쇼팽 전문가들도 복원에 실패했다고 한다. 원래 쇼팽은 악보를 꽤 깔끔하게 작성하는 작곡가인데 이 악보는 거의 베토벤급의 암호 수준으로 작성되어 있는 것을 보면 모종의 이유로 일단 자신만 알아볼 수 있게 급하게 갈겨적은 후에 정서하지 않고 그대로 방치한 것으로 보인다. 

쇼팽의 전주곡 27번의 자필 악보


한편으로 악보 오른쪽에 적혀 있는 숫자와 글자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말 궁금한데 아무리 인터넷을 찾아봐도 이에 대해 제대로 설명을 해놓은 글이 없다. 혹시 아시는 분은 알려주시길.

2. 전주곡 27번 '악마의 트릴' 

 

이 전주곡 27번은 2002년 7월 로드 아일랜드 뉴포트에서 열린 뉴포트 음악 페스티벌에서 피아니스트 알랭 재콘에 의해 초연되었다. 백문이 불여일청, 일단 들어보자. 쇼팽의 다른 전주곡처럼 연주시간 1분 내외의 짧은 곡이다. 

쇼팽의 전주곡 27번 eb단조, 악마의 트릴 - 폴 바튼(Paul Barton)

 

 

악보의 원본은 완결되지 않은 채로 중단됐는데 칼버그는 나름 완결된 버전으로 악보를 복원했다. 그래서 2002년 발표 당시에 과연 칼버그가 원본에 충실하게 복원을 한게 맞는지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하지만 이후에 제대로 된 반박이나 대안이 제시된 사례는 없기 때문에 현재까지 별 이의 없이 칼버그가 복원한 악보가 통용되고 있다.

다만 이 악보는 어디까지나 연주 가능한 버전이지 완벽하게 복원된 결정판은 아니다. 영상을 보면 알겠지만 이 악보에는 셈여림(p, f, >, < 등), 페달 등의 지시기호가 없으며 스타카토, 레가토, 이음줄 같은 연주기호도 없다. 오직 음표만 간신히 건져낸 것이기 때문에 다소 무미건조하게 들릴 수 있다. 물론 이 정도라도 복원할 수 있었던 것에 정말 감사해야겠지만.

 

제프리 칼버그는 이 곡에 '악마의 트릴'이라는 부제를 붙였는데 왜 이런 이름을 붙였는지 들어보면 바로 이해가 될 것이다. 영상의 악보에 있는 것처럼 이 곡의 왼손은 트릴로 일관하고 있는데, 이 저음부의 트릴 때문에 곡의 분위기가 상당히 불안하고 음산하게 느껴진다. 여러 모로 곡에 어울리는 부제라고 볼 수 있다. 

 

이 악마의 트릴은 원래 바로크 말기의 작곡가이자 바이올리니스트였던 주세페 타르티니의 바이올린 소나타 g단조의 별명인데, 이 소나타의 3악장에서 바이올린의 인상적인 트릴이 등장하기 때문에 이런 별명이 붙은 것이다.  칼버그를 비롯한 쇼팽 전문가들은 쇼팽이 타르티니의 악마의 트릴에서 영감을 받아서 이 곡을 작곡한 것이 분명하다고 주장했다. 참고로 두 악마의 트릴은 모두 작곡가 사후에 발표되었다. ㄷㄷㄷ

타르티니의 바이올린 소나타 g단조 '악마의 트릴' 3악장 

3. 작곡 시기 

이 악마의 트릴은 대략 op. 28의 24전주곡의 작곡이 마무리되고 있던 1839년, 쇼팽이 조르쥬 상드와 마요르카에서 머무르고 있던 시절에 작곡된 것으로 보인다. 당시 쇼팽은 결핵으로 고생하고 있었기 때문에 건강을 회복하기 위해 따뜻한 마요르카에서 겨울을 보내려고 했던 것인데, 불운하게도 1839년의 마요르카에는 역대급의 한파가 몰아닥치는 바람에 쇼팽의 건강은 오히려 더 나빠졌다. 이 곡의 분위기는 바로 병과 추위에 고생하던 쇼팽의 당시 상황을 반영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원래는 이 곡을 op. 28 24전주곡의 14번곡으로 작곡했다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폐기한 것으로 보인다.  시다시피 24전주곡은 24개의 조성별로 각 한곡씩 작곡된 전주곡의 모음인데 eb 단조의 순서가 바로 14번이다. 참고로 최종적으로 출판된 24전주곡의 14번 eb단조 전주곡은 이 곡과 특별한 관련이 없으며 완전히 새로 작곡된 곡이다. 다만 분위기는  악마의 트릴 못지 않게 어둡고 암울하다. 앙손 모두 거의 저음부에서만 움직이고 고음부로의 도약이나 분위기의 고조 없이 끝까지 어두운 분위기로 일관하고 있다.

 

쇼팽의 op.28 24전주곡중 14번 eb단조 - 조성진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현재의 전주곡 14번 대신 이 악마의 트릴을 14번에 놓았어도 정말 훌륭했을 것 같다. 물론 선택은 작곡가 본인이 하는거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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