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전에 이 블로그에서 베토벤의 유일한 이탈리아어 콘서트 아리아(작품번호가 있는 작품 한정) 'Ah! Perfido' op. 65를 소개했었다. 이 번에는 모차르트의 특별한 소프라노 아리아 K. 316, 'Popoli di Tessaglia(테살리아의 백성들이여)!'에 대해 알아보자.
https://fazioli72classic.tistory.com/entry/희소가치가-높은-베토벤의-콘서트-아리아-Ah-Perfido-op-65
콘서트 아리아는 클래식 팬들에게 친한 음악 장르는 아니다. 아리아는 주로 오페라나 오라토리오와 같은 대규모 공연을 위해 작곡되는 곡이다. 또 19세기부터는 아리아와는 성격이 많이 다른 '가곡'이 유행했다. 때문에 역사적으로 콘서트를 위한 아리아는 그리 많이 작곡되지 않았으며 주요 작곡가도 모차르트를 비롯한 몇명에 국한되어 있다.
하지만 모차르트의 콘서트 아리아는 모차르트의 삶과 음악을 이해하는데 상당히 중요한 음악장르인데, 대부분의 아리아들이 모차르트와 인연을 맺었던 특정 가수들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모차르트는 주로 자신과 같이 활동했던 가수들의 노래 연습을 위해서, 또는 축하나 감사를 표시하기 위한 선물의 차원에서 이 아리아들을 작곡했다. 기회가 닿으면 모차르트의 콘서트 아리아와 관련된 가수들을 목록으로 정리해볼 생각인데 일단 기네스북에도 올라가 있는 이 K.316의 아리아에 대해 알아보자.
1. K. 316의 작곡 배경
이 곡은 1779년 모차르트의 나이 23세에 작곡된 곡으로 나중에 자신의 처형이 되는 소프라노 가수 알로이지아 베버를 위해 작곡했다. 모차르트는 1777년 구직을 위해 만하임에 머물던 시절 자신보다 4살 어린 17세의 소프라노 가수 알로이지아 베버(Aloysia Weber)를 만나게 된다. 성악에도 일가견이 있었던 모차르트는 알로이지아 베버의 음악선생을 자처하면서 금세 사랑에 빠졌다. 만약 만하임에서 구직이 잘 됐다면 그녀와 결혼을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구직이 무산되자 모차르트는 눈물을 머금고 만하임을 떠나야 했고 알로이지아 베버와의 로맨스도 그대로 끝나버렸다.
모차르트는 뮌헨 만하임 파리 등의 도시를 돌아다니면서 열심히 구직을 했지만 여의치 않자 1779년 결국 구직을 단념하고 부친이 있는 찰츠부르크로 돌아가는데, 도중에 뮌헨에 잠시 들렸다가 마침 여기서 가수로 활동하고 있던 알로이지아 베버와 재회하게 된다. 두 사람이 헤어졌던 2년의 기간 동안 알로이지아는 전도유망한 가수로 올라선 반면 모차르트는 직장도 돈도 없는 백수 신세가 된 상황이었다. 그래서인지 알로이지아는 뮌헨에서 재회한 모차르트를 특별하게 대하지 않았다.
일이 잘 풀리지 않은데다 옛 애인의 차가워진 모습에 이래저래 낙담한 모차르트였지만 그래도 뮌헨에 머무는 동안 알로이지아를 위해 이 글에서 이야기할 아리아 K.316을 작곡했다. 원래 이 K.316은 단독으로 연주하기 위한 곡은 아니었다. 당시 알로이지아는 글룩(Christoph Willibald Gluck)의 오페라 알체스테(Alceste)에 출연 중이었는데 이 아리아는 알체스테 공연때 알로이지아를 위한 삽입 아리아(insetion aria, aria di baule)로 작곡된 곡이었다. 이 아리아의 제목이 '테살리아의 백성들이여!'인 것도 이 알체스테의 지리적 배경이 테살리아이기 때문.
삽입 아리아는 가수가 오페라 공연 중에 원래 예정에 없던 아리아를 부르는 것을 말하는데, 가수가 장기자랑 차원에서 오페라와 상관없는 자신의 최애곡을 부르는 경우도 있고 이 K.316처럼 공연을 위해 다른 작곡가가 헌정한 곡을 부르기도 하고 때로는 관중들이 요청하는 곡을 부르기도 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행해졌다. 지금은 이런 경우를 찾아보기 힘들지만 18세기까지는 오페라 공연에서 꽤 흔한 관행이었다.
다만 알로이지아가 공연 중에 실제로 이 곡을 불렀는지, 또 불렀다면 제대로 불렀는지 여부는 불확실하다. 알로이지아 베버는 당대 최고의 가수중 한명이었고 그녀를 위해 작곡된 곡 중에는 초고난도의 곡이 많았기 때문에 실제로 불렀을 가능성이 없지는 않지만 당시 그녀는 겨우 19살이었기 때문에 이 곡을 소화하기는 쉽지 않았을 거라는 의견이 대세이다. 이 곡의 난이도가 너무 높아서 공연 중에 부르기에는 무리가 있었기 때문에 결국 삽입 아리아로 활용되지 않고 소프라노가 단독으로 부르는 콘서트용 아리아로 정착되었다.
2. K.316 음악에 대해
백문이 불여일청, 일단 음악을 들어보고 이야기하도록 하자.
구성적으로 K.316은 모차르트의 다른 콘서트 아리아와 마찬가지로 초반부의 레치타티보(정확하게는 레치타티보 아콤파냐토)와 이어지는 A-B-A 형식의 다카포 아리아로 구성되어 있다. 조성의 경우 레치타티보는 C단조인데 아리아에서 C장조로 전조된다. 반주는 단촐하게 현악 4부에 관악기 4대(호른 2대, 바순 및 오보에 1)가 추가된 형태이다.
(1) 이 곡이 기네스북에 등재된 이유
이 아리아가 정말 특별하고 기네스북에도 등재된 이유는 바로 엄청난 가창 난이도 때문이다. 보통 일급 소프라노의 기준으로 하이 C, 즉 C6 음을 이야기하는데 바로 이 C6음 이상의 음을 제대로 구사할 수 있느냐 여부가 소프라노의 능력을 판단하는 척도가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아리아는 곡 최후반부에 C6보다 무려 5도 더 높은 G6까지 올라간다. ㄷㄷㄷ 그것도 한 번이 아니라 두 번씩이나. 그래서 이 아리아는 기네스북에 사람의 목소리로 가장 높은 음을 내야 하는 곡으로 등재되었다.
게다가 이 아리아는 음역대가 2옥타브가 넘기 때문에 가수에게 초고음과 더불어 넓은 음역대까지 요구한다. 말 그대로 가수를 고문하는 아리아라고 볼 수 있는데, 그래서 당대 최고의 소프라노들도 이 곡을 컨디션이 아주 좋은 상황에서 통과 의례로 한 번 정도 부를 뿐 절대로 자주 부르지 않는다. 모차르트가 자신을 돌아보지 않는 알로이지아에 대한 섭섭함 때문에 작정하고 아주 어렵게 작곡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한편 기네스북에 등재됐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이런 의문이 생길 수 있다. 그냥 작곡가가 임의로 아주 높은 음을 사용하도록 작곡하면 될텐데 굳이 이 곡이 기네스북에 올라갈 이유가 있을까? 물론 음높이는 작곡가가 마음대로 정할 수 있지만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음높이와 기교를 요구하는 곡은 아무도 부르려 하지 않을 것이고 음악으로서의 가치도 인정받지 못할 것이다. 따라서 높은 음을 사용하는 성악곡을 작곡하려면 일단 이 곡을 소화할 수 있는 가수가 필요한데, 이 K.316도 알로이지아 베버를 염두에 두지 않았다면 음높이가 G6까지 올라가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이 곡이 기네스북에 등재된건 알로이지아 베버 덕분인 셈이다.
C6가 소프라노의 능력을 판단하는 기준음이라면 G6는 말 그대로 인간 목소리 높이의 한계를 판단하는 음이다. 그래서인지 역대 성악곡 중에 G6 수준의 음을 요구하는 곡은 그리 많지 않다. 모차르트와 동시대에 활동했던 오페라 작곡가 이그나츠 움라우프(Ignaz Umlauf, 1746-1796)의 오페라 도깨비불(Das Irrlicht)에서는 G6보다 한음 더 높은 A6을 요구하는 아리아가 등장한다고 하는데, 이 오페라가 기네스북에 등재되지 않은 것은 오늘날에는 사실상 연주되지 않기 때문이다. 한편 쥘르 마스네의 에스클라몽(Esclarmonde)에서 여주인공인 에스클라몽의 아리아가 G6까지도 올라간다고 한다. 모차르트와 악연이 있었던 안토니오 살리에리의 오페라 Europa Riconosciuta(에우로파의 재등장)의 등장인물인 에우로파와 세멜레는 G6보다 반음 낮은 F#6를 종종 구사한다.
그나마 G6보다 한음 낮은 F6는 나름 자주 등장하는데 대표적인 경우가 모차르트의 마술피리에 등장하는 '밤의 여왕'의 두 아리아이다.
(2) 곡의 내용
쓰다 보니 이 곡의 난이도에 대해서만 계속 이야기했는데 이제 곡의 내용에 대해서도 알아보자. 앞서 말한 것처럼 이 K.316 아리아는 오페라 알체스테 1막의 2장의 삽입 아리아로 작곡되었는데 테살리아의 왕 아드메토(admeto)가 불치병에 걸려 죽어가자 그의 부인인 알체스테가 이를 슬퍼하면서 신에게 자비를 구하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구체적인 가사 전문은 위키백과 등을 참고하기 바란다.
이 아리아 이후 이어지는 내용은 대강 이렇다. 알체스테를 비롯한 테살리아 사람들이 이렇게 슬퍼하는 와중에 아드메토가 살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아드메토 대신 목숨을 바쳐야 한다는 신탁을 듣게 된다. 그러자 (다들 예상하다시피) 알체스테가 남편 아드메토를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치기로 하고 아드메토를 살려낸다. 그리고 알체스테는 남편 대신 죽으려고 하는데, 죽기 직전에 신이 자비를 베풀어서 아드메토와 알체스테 모두 목숨을 구하게 된다. 내용은 이처럼 뻔하지만 음악적으로는 꽤 의미가 있는 작품이기 때문에 이 알체스테는 현재 글룩의 대표작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한편 이 오페라는 이탈리아어 버전과 프랑스 공연을 위한 프랑스어 버전 두 가지가 있는데 세부적인 내용과 음악에서 꽤 차이가 있다. K.316은 이탈리아어 가사로 되어 있기 때문에 당연히 이탈리아어 버전의 오페라에 삽입된 아리아였다. K.316이 오페라에서 빠진 이유는 일차적으로 높은 난이도 때문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아리아 자체가 오페라의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았던 점도 있었다. 알체스테를 비롯한 글룩의 후기 오페라는 화려한 가창기교나 자극적인 악구가 거의 없고 다카포 아리아 대신 좀더 대사 전달이 용이한 창법을 사용하고 있다. 또한 내용과 직접 관련이 없는 부수적인 요소을 가급적 배제해서 극적인 분위기를 최대한 살리는데 주력하고 있다. 때문에 이 오페라에 K.316같이 엄청난 가창력을 요구하는 화려한 아리아가 삽입될 경우 분위기 측면에서 상당히 이질감을 주게 되며 한편으로 글룩이 주창하던 오페라의 드라마성을 해칠 우려도 다분했다.
K.316은 콘서트용 오페라로 정착한 후에도 워낙 높은 난이도 때문에 자주 불리지는 않았지만(이건 현재에도 마찬가지이다) 모차르트 이후에 당대의 일급 가수들이 가창력을 과시하기 위해 종종 불렀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3. K.316 이후의 모차르트와 알로이지아 베버
모차르트는 K.316을 작곡하기 전 만하임에서 알로이지아와 잠깐 사귈 적에도 그녀를 위해 아리아 K.294, 'Alcandro, lo confesso(고백해봐요 알칸드로)'를 작곡했다. K.316만큼은 아니지만 이 곡도 상당한 난곡으로 Eb6까지 올라간다. 17세의 가수 지망생이 부르기에는 쉽지 않은 곡이다.
모차르트와 알로이지아 베버는 K.316 아리아를 기점으로 인간적으로는 남남이 되었지만 음악적인 관계는 오히려 이 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알로이지아 베버는 모차르트의 음악 생산을 자극했던 여러 뮤즈 중 한명이었으며 모차르트는 평생에 걸쳐 알로이지아를 위해 중요한 곡을 많이 작곡했다
이에 대한 자세한 것은 기회가 있을 때 따로 다루도록 하겠다.
'클래식 음악' 카테고리의 다른 글
표절로 만들어진 헨델의 걸작 오라토리오 '이집트의 이스라엘인' (3) | 2024.12.01 |
---|---|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3번 c단조 Op. 37이 특별한 음악인 이유 (4) | 2024.11.24 |
2002년에 발표된 쇼팽의 전주곡 27번 '악마의 트릴' (1) | 2024.11.10 |
200년만에 발견된 쇼팽의 '잃어버린 왈츠' (5) | 2024.10.31 |
브릿지타워 소나타가 될 뻔 했던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 제 9번, 크로이처(Kreutzer) (5) | 2024.10.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