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브릿지타워 소나타가 아닌 크로이처 소나타가 된 이유
베토벤은 이 걸작 바이올린 소나타를 33살인 1803년에 완성했으며 이 작품을 당시 연주여행 차 비엔나에 온 영국의 젊은 바이올리니스트 브릿지타워에게 헌정했다. 브릿지타워의 바이올린과 작곡자 본인의 피아노로 이루어졌다. 조지 브릿지타워(George Bridgetower, 1778~1860)는 폴란드 태생의 혼혈 바이올리니스트(뮬래토)로 부친은 서인도제도 바베이도스 출신이고 어머니는 독일계 폴란드인이었다. 어린 나이에 영국에 이주했는데 10살 경부터 바이올린 연주자로 활동을 했을 정도로 엄청난 재능의 소유자였다. 베토벤의 삶을 주제로 한 영화 '불멸의 연인'에서도 브릿지타워가 잠시 등장한다.
베토벤은 브릿지타워의 바이올린 솜씨에 상당히 만족했다. 9번 바이올린 소나타의 초연때 그의 연주에 감탄한 베토벤은 자신이 갖고 있던 악기 조율용 소리굽쇠를 브릿지타워에게 선물하기도 했다. 원래 9번 바이올린 소나타 출판용 표지에 있던 헌정사에 보면 '뛰어난 미치광이 뮬래토 작곡가 브리지타워를 위한 뮬래토 소나타' 라는 장난스러운 문구가 있었는데, 이는 두 사람이 상당히 친했다는 방증이다.
그런데 이렇게 밀접했던 두 사람의 음악적 동반관계는 갑자기 깨지게 된다. 베토벤은 이 소나타를 브릿지타워에게 헌정하기로 했던 것을 취소하고 뜬금없이 프랑스의 바이올리니스트였던 로돌프 크로이처에게 헌정해 버린다. 왜 이런 급작스러운 파국을 맞게 되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은데, 다만 이 소나타가 작곡된지 55년 후인 1858년에 브릿지타워와 친분이 있었던 바이올리니스트 디를웰(J.W. Thirlwell)이 음악 세계(Musical World)라는 잡지에 기고한 글에 관련된 이야기가 있다. 디를웰에 의하면 베토벤과 브릿지 타워는 술집에서 한잔 하다가 여자와 관련한 이야기로 사소한 시비가 붙었는데 이때 격분한 베토벤이 이후에 소나타 헌정자를 브릿지타워에서 크로이처로 바꿔버렸다는 것이다. 이 말다툼에서 언급된 여성은 베토벤이 좋아하는 사람이었다고 하는데 1803년경 베토벤이 좋아하던 여성은 오스트리아 백작 가문의 줄리에타 귀차르디(Giulietta Guicciardi, 1782-1856)였다. 당시 베토벤은 그녀에게 피아노 소나타 14번(월광 소나타)를 헌정하기도 했다
물론 이 것은 어디까지나 추정일 뿐이다. 애초에 디를웰의 이야기가 어디까지 사실인지 불확실한데다 실제로 여자 이야기로 싸움이 붙었다고 하더라도 이야기의 주인공이 귀차르디였는지도 알 수 없다. 확실한 것은 두 사람이 모종의 이유로 사이가 갑작스럽게 벌어졌고 이로 인해 9번 바이올린 소나타의 헌정이 취소됐으며 이후 다시는 만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다만 브릿지타워는 이후 공연에서 종종 베토벤 곡을 연주했다고 하며 1813년 런던에서 베토벤의 현악 5중주 Op. 29가 연주되었을 때 브릿지타워가 참여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한편 본의 아니게 바이올린 소나타를 헌정받은 크로이처의 반응은 어땠을까. 로돌프 크로이처(Rodolphe Kreutzer, 1766~1831)는 당시 유럽에서 가장 명성이 높은 바이올리니스트 중 한명이었으며 한편으로 20여곡의 바이올린 협주곡과 40여곡의 ㄷㄷ 오페라를 작곡한 작곡가이기도 했다. 크로이처는 1798년에 프랑스 대사의 수행원으로 비인에 왔을 때 베토벤을 잠깐 만난 적이 있었는데 아마 베토벤이 이 때의 인연을 생각해서 그에게 헌정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정작 악보를 받아본 크로이처는 이 곡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으며 결국 이 곡을 평생 연주하지 않았다. 베를리오즈에 따르면 크로이처는 이 곡에 대해 '난폭하고 이해불가한 곡'이라고 평했다고 한다. 사실 크로이처는 생애 내내 베토벤의 곡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는데, 서정적이고 우아한 프랑스식 고전파 양식을 지향했던 크로이처에게는 베토벤의 음악 스타일이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이 바이올린 소나타 9번은 크로이처에게 홀대를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이후에 '크로이처 소나타'라는 별명이 붙게 되었다.
2. 작품에 대해
이 명작 소나타에 대해 여기까지만 이야기하고 그냥 끝내기는 아쉬우니 작품에 대해 간단하게 살펴보자. 앞서 본 것처럼 작품의 헌정과 관련해서는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곡 자체는 큰 이슈 없이 무난하게(?) 작곡되었으며 33살 젊은 베토벤의 패기가 느껴지는 상당히 규모가 큰 작품이다. 총 3악장 구성이며 연주시간은 대략 35~40분 정도 된다.
이 곡의 초판 표지에는 "Sonata per il Pianoforte ed uno violino obligato in uno stile molto concertante come d’un concerto(협주곡처럼 고도의 합주를 하는 형태의 바이올린 오블리가토와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이 문구처럼 이 크로이처 소나타는 바이올린과 피아노 두 악기가 매우 긴밀하게 합을 맞춰서 연주하는 곡인데, 악장마다 합을 맞추는 분위기가 상당히 다르다. 1악장은 협연이 아니라 경연(competion)에 가까울 정도의 두 악기가 격정적인 패시지로 대등하게 접전을 벌인다. 반면 2악장은 갑자기 화해를 한 것처럼 두 악기가 서정적이고 조화로운 분위기를 연출한다. 3악장에서는 춤곡처럼 즐거운 분위기를 연출하면서도 종종 두 악기가 심상치 않은 대결을 펼친다.
제1악장 - 아다지오 소스테누토-프레스토(Adagio sostenuto-Presto)
처음에 강렬하고 느린 바이올린 서주가 등장하다가 피아노가 강렬한 타건음으로 분위기를 바꾼다. 이후 두 악기가 잠시 조용하게 탐색을 하다가 곧 빠르고 격정적인 2중주로 이어진다. 바이올린이 피치카토와 강렬한 악센트를 선보이며 피아노와 접전을 벌이는데 이전의 바이올린 소나타에서는 볼 수 없는 양상이다. 한 악기의 선율을 다른 악기가 좀더 강렬하게 이어받는 대목이 자주 등장하고 종종 두 악기가 동시에 강력하게 엉겨붙기도 한다. 마지막에 조용히 잦아드는 듯 하다가 갑자기 강력하고 바른 코다가 등장하면서 끝을 맺는데, 이런 극적인 끝맺음은 이후 베토벤의 작품에서 자주 등장한다.
한편 이 1악장의 조성은 다소 애매한데, 보통 A장조로 표기하지만 처음의 짧은 바이올린 독주부만 A장조이고 이후 본격 2중주가 펼쳐지는 프레스토는 끝까지 A단조로 진행되기 때문에 A단조로 표기하는게 맞다는 의견이 많다.
제2악장 - 안단테 콘 바리아치오니(Andante con variazioni)
주제와 4개의 변주로 구성된 악장으로 1악장과 대조적으로 전체적으로 온화하고 평온한 분위기를 준다. 주제는 상당히 아름다운 선율을 갖고 있으며 변주도 주제 못지 않게 아름답다. 제 1 변주에서는 피아노가 주로 등장하고 바이올린은 오블리가토 역할을 하는 반면 제 2변주에서는 반대로 바이올린이 중심이 되고 피아노는 반주 역할을 담당한다. 바이올린이 32분음표로 활발하게 움직이면서 분위기를 이끌어간다. 변주 3은 두 악기가 함께 느리고 약간 처량한 선율을 연출한다. 마지막 변주 4는 피아노가 먼저 등장하고 이어 바이올린이 피치카토로 등장한 후 두 악기가 대등하게 분위기를 이끌어나간다. 마지막에 아름다운 몰토 아다지오의 코다가 등장하고 1악장과 달리 조용히 마무리한다.
제3악장 - 피날레-프레스토(Finale-Presto)
원래 이 악장은 바이올린 소나타 6번 Op.30-1의 3악장으로 작곡됐지만 분위기가 맞지 않다고 판단해서 이 크로이처 소나타에 사용되었으며 6번 소나타의 3악장은 따로 작곡되었다. 통상적인 소나타 형식으로 되어 있는데, 제1주제는 타란텔라 풍의 리듬으로 진행되며 제2주제는 더 빠르고 화려한 타란텔라 리듬으로 진정한 춤곡 느낌을 준다. 1악장과 반대로 두 악기가 시종일관 힘을 합쳐서 함께 휘몰아치는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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