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음악

희소가치가 높은 베토벤의 콘서트 아리아 Ah! Perfido op. 65

파죨리 클래식 2024. 10. 20.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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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ethoven의 Ah! Perfido op. 65, 소프라노 재클린 와그너

이 콘서트용 아리아는 베토벤이 26살에 작곡한 초기 시절의 작품으로 작품번호가 붙어 있는 베토벤의 작품 중에 유일한 이탈리아어 아리아이자 op. 116과 더불어 이탈리아어로 된 유이한 작품이다.  

곡 제목인 페르피도(perfido)는 이탈리아어로 사기꾼, 배신자, 거짓말장이와 같은 뜻을 갖고 있다.  그래서 제목을 그대로 번역하면 '야이 사기꾼아!', '이 배신자야!'  정도가 되는데, 보통은  '아, 못믿을 사람이여!'나 '아, 나를 속인 이여!' 와 같이 시적으로 순화시킨 제목을 사용한다. 명색이 클래식 음악인데 제목이 너무 원색적이면 좀 거시기 하니까;;;;;  

 

곡 내용은 자신을 배신한 연인에 대한 분노와 슬픔 그리고 자기에게 다시 돌아오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을 담고 있다.  전체 가사는 위키백과 등에 있으니 참고하기 바라며 이 글에서는 생략하겠다. 

1. 작곡 배경 및 출판


베토벤은 25살때인 1795년에 이 곡의 스케치를 시작했으며 체코의 프라하를 여행 중이던 1796년에 완성했다. 베토벤은 당시 프라하에서 활동하고 있는 소프라노 요제파 두셰크(Josepha Duschek)를 위해 이 곡을 썼는데 요제파가 먼저 작곡을 의뢰했는지 아니면 베토벤이 먼저 그녀에게 곡을 제안했는지는 확실치 않다. 요제파 두셰크는 모차르트와 매우 인연이 깊은 가수인데,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과 '돈 지오반니'가 프라하에서 엄청난 흥행을 했을 때 여주인공을 맡았던 가수가 바로 요제파 두셰크이며 모차르트는 이 외에도 그녀를 위해 KV 528의 아리아를 비롯한 여러 곡을 작곡했다.  


곡은 프라하에서 완성되었지만 초연은 
1796년 11월  21일 라이프치히에서 이루어졌다. 1805년 라이프치히에서 초판된 악보의 표지를 보면 요제파 듀세크의 라이프치히 공연을 주선한 요제피네 드 클라리 백작부인에게 이 곡을 헌정한다고 되어있다. 

1796년 경의 요제파 듀세크(1754-1824)


초연이 이루어진 후 이 곡은 한동안 잊혀졌으며 따로 출판되지도 않았다(그래서 초기 작품인데도 작품번호가 뒤로 밀렸다). 그러다가 1805년 라이프치히에서 작품번호가 부여되지 않은 채로 출판되었고 이후 1819년에 라이프치히에서 이 곡이 재출판되면서 작품번호 46번을 부여받았다. 하지만 같은 해 빈의 아르타리아 출판사에서도 이 곡을 출판하면서 작품번호 65번을 부여했는데, 작품번호 46번은 이미 가곡 아델라이데 (Adelaide)가 부여받았기 때문에 이 곡의 작품번호는 65번으로 확정됐다. 특이한 것은 1819년에는 이미 베토벤의 작품번호가 100번을 넘어가고 있었는데도 65번이 부여됐다는 것이다. 그 때까지 작품번호 65번을 부여받은 작품이 없었던 탓인데 베토벤이 왜 65번을 빼 놓았는지 이유는 알 수 없다.

여튼 이 곡은 요제파 듀세크의 초연 후 12년만인 1808년 빈의 테아터 안 데어 빈(Theater an der Wien)에서 이루어진 역사적인 공연에서 다시 연주되었는데 이 때 가수는 17살의 요세피네  슐츠-킬리슈키(Josephine Schultz-Killitschky)였다. 이 때의 연주는 평이 그리 좋지 않았는데 아무래도 17살의 가수가 이 난곡을 제대로 소화하기에는 역부족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당시 베토벤은 이 소녀 가수가 부를 수 있도록 곡을 일부 수정했다고 한다. 

한편 작품번호가 붙은 이탈리아어 작품은 두 곡 뿐이지만  작품번호가 붙어 있지 않은 베토벤의 작품 중에 이탈리아어 작품이 몇 곡 더 있다. Ah! Perfido를 비롯해서 현존하는 베토벤이 남긴 이탈리아어 작품은 모두 오페라 작곡가 안토니오 살리에리에게 성악 작곡법을 배웠던 1790년대 후반부터 1800년대 초반에 작곡된 것이다. 그래서 베토벤의 이탈리아어 작품에는 살리에리의 영향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으며 한편으로 모차르트의 영향도 나타난다. 이 이탈리아어 작품들 중에 하필 이 Ah! Perfido만 출판되고 작품번호까지 부여받은 것은 습작에 가까운 다른 이탈리아어 작품과 달리 나름의 완성도를 갖고 있고 실제로 공연된 적도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한편 op. 116으로 출판된 다른 이탈리아어 작품 Tremate, empi tremate는 1803년 경에 작곡된 혼성 3중창(소프라노, 테너, 베이스)으로 말년의 베토벤이 경제적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뒤늦게 출판한 것이다. 

안토니오 살리에리. 당대 최고의 오페라 작곡가였지만 현재는 모차르트와의 악연으로 더 유명하다



2. 음악적 특징


Ah! Perfido의 연주 구성은 소프라노 독창과 관현악 반주로 되어 있는데 금관악기는 프렌치혼이 사용되고 있으며 특이하게 목관악기 그룹에서 오보에가 빠져 있다.  곡의 구성은 관현악 서주 - 세나(C장조) - 아리아(Eb장조) - 관현악 후주로 되어 있으며 전체 연주시간은 대략 12분~14분 사이이다.  

짧은 전주에 이어 소프라노가 Ah! Perfido를 외치듯이 노래하면서 C장조의 세나(Scena)가 시작되는데, 이 세나는 오페라의 레치타티보, 좀더 정확하게는 레치타티보 아콤파냐토(recitativo accompagnato)와 같은 개념이다. 말하듯이 노래하는 창법을 구사하며  선율미보다는 대사 전달에 좀더 주력한다.

 

이 곡에 사용된 세나의 가사는 당시 이탈리아의 유명한 극작가이자 오페라 대본 작가였던 피에트로 메타스타지오의 '스키로의 아킬레우스(Achille in Sciro)'에서 가져온 것으로, 자신을 배신한 연인에 대한 분노와 복수의 심정을 강한 어조로 절절하게 표현하고 있다. 노래하는 화자의 복잡하고 불안정한 심리를 대변하기 위해 곡의 속도가 자주 바뀌는데, 예를 들어 분노나 복수심을 표출할 때는 템포를 빠르게, 슬픔을 표현할 때는 느리게 처리하고 있다. 

이어지는 아리아(Aria)는 전형적인 A-B-A' 형태의 다 카포 아리아이며 뒤에 짧은 코다가 붙어 있다. 이 아리아는 앞서 나왔던 세나와 여러 가지로 대비가 되는데, 가사의 어조가 바뀌면서 음악도 좀더 서정적인 분위기로 바뀌고 조성도 Eb 장조로 전조된다. 이 아리아에 사용된 가사의 출처는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는데, 세나의 가사가 배신한 연인에 대한 분노와 증오심을 표출하고 있다면 아리아의 가사는 자신을 불쌍히 여겨달라, 버리지 말아달라는 애처로운 내용을 담고 있다. 또 가사 자체의 길이는 세나의 절반밖에 되지 않지만 연주시간은 세나의 2배를 넘는데, 세나보다 호흡이 길고 가사가 자주 반복되기 때문이다. 

관현악 반주도 곡의 분위기를 꽤 효과적으로 표현하고 있는데 예를 들어 불안한 감정을 표현할 때는 현악기에서 트레몰로로 진행하며 종종 부감7화음이나 증6화음이 등장한다. 또 슬픈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현악기의 피치카토로 눈물을 묘사하는 대목도 등장한다. 전체적으로 모차르트의 관현악 수법을 참조한 흔적이 많이 보인다. 

아리아 후반부에는 'Dite voi, se in tanto affanno, non son degna di pietà(말해 주세요, 실의에 빠진 나는 동정받을 자격도 없나요)' 라는 가사가 여러번 반복되고 최종적으로 코다에서도 이 가사가 반복된다. 이 때 단조로운 반복을 피하고 분위기를 고조시키기 위해 종종 하강식 반음계가 등장하는데 가수들에게 상당히 어려움을 주는 부분이다. 관현악에서도 가사가 반복될 때마다 악기 편성을 달리 하거나 캐논 형태로 악기 간에 모방진행을 하는 등의 변화를 주면서 가사의 단조로움을 극복하고 있다. 

3. 작품의 의의 


이처럼 이 Ah! Perfido는 살리에리나 모차르트 등의 대선배의 영향이 많이 나타나면서도 나름의 독창적인 수법도 엿보이는 흥미로운 작품이다.  물론 작품 자체의 음악적인 가치도 있지만 그보다 젊은 시절 베토벤이 음악적으로 발전하는 도상에 있는 작품으로서 연구가치가 높은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베토벤이 살리에리에게 성악곡 작법을 배웠던 1790년대는 빈에서 고전파 양식의 이탈리아 오페라의 유행이 끝나가는 시기였다. 당대 최고의 오페라 작곡가였던 살리에리 본인도 1804년에 마지막 오페라를 작곡한 후 오페라계에서 은퇴했다. 때문에 베토벤의 이탈리아어 작품은 Ah! Perfido를 비롯한 몇몇 습작만 남게 됐고 오페라같은 본격적인 작품으로 구현되지는 못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살리에리의 가르침이 의미가 없었던 것은 당연히 아니었고 오히려 베토벤에게 매우 값진 기회였다. 직접 이탈리아어 작품은 쓰지 않았지만 오페라 피델리오나 가곡, 종교음악 등 베토벤의 각종 성악작품에 살리에리에게 배웠던 작법이 효과적으로 활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괜히 베토벤이 살리에리를 평생동안 스승으로 존경한 것이 아니다.

한편으로 이런 시기적인 특성이 역설적으로 베토벤의 이탈리아어 작품을  레어템으로 만든 측면이 있다.  본의 아니게 몇 작품 남기지 못하는 바람에 작품성과 별개로 희소가치가 크게 높아진 것. 이미 베토벤 당대부터 이런 희소가치가 관심을 받았는데,  초창기에 쓴 Ah! Perfido나  Tremate, empi tremate 같은 곡이 뒤늦게 작품번호를 부여받고 출판된 데에는 이런 배경이 있다. 

*****
여담으로 이 곡은 전설의 디바 마리아 칼라스(Maria Callas)와 인연이 많은 곡이다. 칼라스는 공연이나 라이브에서는 종종 베토벤의 곡을 불렀지만 음반으로 남긴 베토벤 곡은 Ah! Perfido가 유일하다. 들어보면 알겠지만 칼라스의 명성에 걸맞는 훌륭한 가창력과 극적인 표현력을 보여주고 있다. 

 

마리아 칼라스의 Ah! Perfido

한편으로 칼라스는 1974년 이후 사실상 은퇴 상태였다가 1976년에 컴백을 노리고 피아노 반주자 제프리 테이트(사실 이 분은 지휘자가 본업이다)와 함께 프랑스 파리에서 몰래 노래 연습을 했는데, 이 때 컴백용으로 연습한 곡이 바로 베토벤의  Ah! Perfido였다. 하지만 파파라치들에게 연습장면을 들켜서 그녀의 좋지 않은 목 상태가 언론에 대서특필되는 바람에 결국 컴백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컴백이 무산된 칼라스는 실의에 빠져서 거의 폐인처럼 지내다가 1년 후인 1977년에 급성 심근경색으로 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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