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에트로 안토니오 로카텔리(Pietro Antonio Locatelli, 1695-1764)는 바로크 시기와 고전기의 과도기에 활약했던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작곡가였다. 현재는 자신보다 85년 후에 태어난 파가니니에 가려져서 별로 알려져 있지 않지만 당대에는 최고의 거장 바이올리니스트로 유명했던 인물이다.
1. 생애
일단 그의 생애에 대해 간략하게 알아보자.
로카텔리는 밀라노 인근의 베르가모에서 출생했으며 10대 초반의 나이에 지역 교회 소속의 바이올리니스트로 활동하면서 일찌감치 재능을 인정받았다. 16세인 1711년에 본격 음악가가 되기 위해 로마(Rome)로 갔으며 당시 로마의 유명 작곡가인 안토니오 몬타나리 또는 주세페 발렌티니에게 작곡을 배웠고 대작곡가 아르칸젤로 코렐리(Arcangelo Corelli, 1653 - 1713)에게도 잠깐 배웠다고 한다. 능력을 인정받은 로카텔리는 1716년부터 1722년사이에는 산타 첼리아의 음악가 협회의 일원으로 활동했으며 추기경 카밀로 치보(Cardinal Camillo Cybo)를 비롯한 로마 귀족들의 후원을 받았다.
그는 1721년에 자신의 첫 협주곡집(XII Concerti grossi à Quattro e à Cinque, Op. 1)을 암스테르담에서 출판했으며 이를 자신의 후원자인 치보 추기경에게 헌정했다.. 1723년부터 1728년까지는 이탈리아와 신성로마제국의 각 지역에 연주여행을 다녔으며 바로 이때 전무후무한 기교를 갖춘 거장 바이올리니스트로 유명해졌다. 그를 유명하게 만들어준 바이얼린 협주곡집 op.3도 바로 이 때 작곡되었다(다만 출판은 몇년 후에 이루어졌다).
연주 여행을 마친 후 1729년에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정착해서 1764년 사망할 때까지 이 곳에서 살았다. 암스테르담에 정착한 이후 로카텔리는 자신의 바이올린 기술이 유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 전문 연주자들은 제자로 받지 않았으며 공개 연주회도 거의 개최하지 않았다. 대신 어려운 기술을 가르칠 필요가 없는 귀족과 부유한 음악 애호가들에게 고액의 교습료를 받고 바이올린을 가르쳐서 큰 돈을 벌었다. 한편으로 바이올린이나 바이올린 현의 제작에도 관여했으며 번 돈으로는 주로 책과 그림을 사들였는데 그의 소장품 중에는 현재 관점에서도 가치가 높은 것들이 많다.
2. 로카텔리의 작품
생애에서 보았듯이 그는 70살 가까이 살았지만 연주자 및 작곡가로 제대로 활동했던 것은 대략 30대 중반까지였으며 일단 돈을 벌어서 암스테르담에 정착한 이후에는 연주활동도 작품활동도 많이 하지 않았다. 오늘날 스포츠 선수들과 비슷한 행보를 보였던 셈. 그래서 그가 남긴 작품 수는 많지 않으며 기록만 남아 있고 악보가 유실된 작품도 좀 있다. 그의 작품 목록은 아래와 같으며 출판되지 않아서 작품번호가 붙어 있지 않은 곡도 몇 있다.
Op.1 – 12개의 합주 협주곡 (1721)
Op.2 – 12개의 플루트 소나타(1732)
Op.3 – 12개의 바이올린 협주곡 "L'Arte del violino(바이올린의 기법)" (1733)
Op.4 – 6개의 합주협주곡(1735)
Op.5 – 6 개의 트리오 소나타(1736) : 바이올린 2대(또는 플루트 2대)와 통주저음
Op.6 – 12개의 바이올린 소나타(1737)
Op.7 – 6개의 바이올린 2대, 비올라와 통주저음을 위한 협주곡(1741)
Op.8 – 6개의 바이올린 소나타와 4개의 트리오 소나타 (1744) Op.9 – 6개의 협주곡 (1762) : 출판되었다는 기록만 남아 있고 악보는 유실됨
음악적인 측면에서 보면 로카텔리의 작품은 대체로 단순한 구성을 갖고 있으며 특별한 변화나 전개가 없이 주제가 반복되기 때문에 단조롭고 지루하게 느껴진다. 바이올린의 화려한 기교가 돋보이고 종종 인상적인 선율이 등장하는 정도가 그나마의 매력 포인트. 다만 로카텔리는 고전기 이후의 협주곡에서 독주 연주자의 기교를 뽐낼 수 있는 카덴차(cadenza)가 일반화되는데 큰 역할을 했다. 로카텔리가 처음으로 카덴차를 사용한 것은 아니지만 그의 초절기교가 카덴차의 본격화에 큰 영향을 주었다.
3. 원조 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 로카텔리
이렇게 음악적으로는 특별한게 없는 평범한 작곡가 로카텔리가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는 것은 바로 작품집 op.3 '바이올린의 기법' 때문이다. op. 3에는 총 12개의 바이올린 협주곡이 있는데 모두 3악장 구성에 각 악장의 구성 방식도 천편일률적으로 비슷하다. 음악적으로만 보면 op. 6이나 op. 8의 바이올린곡이 훨씬 훌륭한데도 굳이 이 op. 3의 12곡이 관심을 받는 것은 작품성 때문이 아니라 곡에 등장하는 바이올린 독주의 엄청난 초절기교 때문이다.
op.3 바이올린 협주곡의 각 악장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1악장 Allegro(빠름) 또는 Andante(약간 느림) : 현악 합주(Tutti) + 독주 바이올린 ▶ 바이올린 독주 카프리치오 ▶ 현악 합주(또는 현악 합주 + 독주 바이올린)
2악장 Largo(느림) : 현악 합주 + 독주 바이올린 ▶ 바이올린 독주 카덴차 ▶ 현악 합주
3악장 Allegro(빠름) : 현악 합주 + 독주 바이올린 ▶ 바이올린 독주 카프리치오 ▶ 현악 합주
각 악장의 초반에는 합주와 바이올린 독주가 같이 또는 번갈아 연주하다가 솔로 바이올린의 화려한 카프리치오가 2~5분가량 이어지고 마지막으로 현악 합주가 다시 처음의 선율을 짧게 연주한 후 끝난다. 2악장의 바이올린 독주는 1,3악장만큼 기교적이지는 않기 때문에 카프리치오라고 하지 않고 그냥 카덴차라고 표현한다. 그래서 op.3 작품집에는 총 24개의 카프리치오가 있는데, 다만 맨 마지막 12번째 협주곡인 'll Labirinto Armónico(화성의 미궁)'은 2악장에도 엄청난 기교를 요구하는 독주가 있기 때문에 실제로는 25개의 카프리치오가 있는 셈이다.
합주와 같이 연주할 때의 바이올린 독주도 상당히 어렵지만 이 협주곡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카프리치오이다. 이 카프리치오는 2~4옥타브 정도로 넓은 범위에 흩어져 있는 16분음표 이하의 짧은 음을 아르페지오 형태로 연주하며 더블스탑도 자주 등장한다. 심지어 초고음에서 128분음표로 진행되기도 하는데 ㄷㄷㄷ 연주자에게 이건 정말 고문과도 같다. 바이올린 구조상 초고음은 일단 제대로 운지하는 것부터 상당히 힘든데(기타처럼 음이 높아질 수록 음간 간격이 좁아지기 때문) 이것도 모자라 속주까지 해야 하니 그 난이도는 상상을 초월한다. 클래식 음악을 잘 모르는 사람도 들어보면 '진짜 연주하겠 어렵겠는데' 하는 생각이 바로 들 정도.
카프리치오가 연주될 때 합주자들은 독주자의 초절기교가 돋보이도록 통주저음까지 끊고 완전 침묵 모드로 돌입하는데, 그래서인지 카프리치오는 협주곡 자체와는 별 상관이 없이 따로 삽입된 곡처럼 보인다. 이 때문에 바이올린 독주자들은 연주회에서 이 카프리치오만 따로 연주하기도 하며 악보도 따로 팔고 있다.
24개의 카프리치오가 다 어렵지만 그 중의 압권은 바로 마지막 협주곡인 '화성의 미궁'의 카프리치오이다. 이 곡의 카프리치오는 연주하다가 바이올린 현이 끊어지지 않을까 걱정이 될 정도로 엄청난 기교와 속주를 요구한다. 그래서인지 로카텔리는 화성의 미궁이라는 표제 뒤에 'facilus aditus, difficilis exitus(들어오기는 쉽지만 나가기는 어려울 것)' 라는, 미궁이라는 제목에 어울리는 문구를 붙여 놓았다.
24개의 카프리치오를 모아놓은 영상이 있으니 한 번 들어보자. 이 중에 협주곡 9번에 3악장에 있는 18번 카프리치오는 특이하게 푸가인데 나름 인상적이다.
들어보면 알겠지만 기교 하나만큼은 가히 파가니니의 원조라고 불릴만 하다.
참고로 로카텔리와 비슷한 시기에 활동했던 또 한명의 기교파 바이올리니스트로 주제페 타르티니(1692-1770)가 있다. 생전에는 로카텔리 못지 않은 유명세를 떨쳤고 오늘날에는 바이올린 소나타 '악마의 트릴(Il trillo del diavolo)'로 유명한 인물인데, 다만 그가 남긴 바이올린곡은 대체로 로카텔리의 op.3 협주곡집처럼 기교적이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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