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작곡가

모차르트와 살리에리 : 살리에리는 정말로 모차르트를 죽였을까?(1)

파죨리 클래식 2024. 11. 7.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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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리에리와 모차르트의 악연은 1984년에 상영된 영화 아마데우스(Amadeus)를 통해 대중들에게도 널리 알려졌다.  이 영화는 영국의 극작가 피터 셰퍼가 1979년에 쓴 동명의 희곡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데, 모차르트의 재능을 시기한 살리에리가 모차르트를 경제적/심리적으로 압박해서 결국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이 골자이다. 영화 자체는 상당히 잘 만들었고 음악도 매우 훌륭하니까 혹시 영화를 못보신 분들은 꼭 보기 바란다. 

영화 아마데우스에 나오는 모차르트(왼쪽)와 살리에리


이 영화에서 살리에리는 말 그대로 질투의 화신으로 나온다. 시종일관 모차르트에 대한 열등의식에 시달리면서 내가 모차르트의 재능을 가질 수 없다면 모차르트도 재능을 발휘할 수 없게 만들겠다는 무시무시한 생각을 한다. 이처럼 살리에리가 모차르트의 능력을 질투했던 2인자라는 이미지는 이 글을 쓰는 2024년 현재에도 건재하다. 심지어 '살리에리 증후군'이라는 의학/심리학 용어도 생겼는데 타인에 대한 열등감에 사로잡혀 시기 질투하는 심리를 일컫는다. 

과연 살리에리가 진짜로 모차르트를 죽게 만들었을까? 지금부터 이 의혹을 자세히 살펴보자. 

1.  살리에리에 대해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하기 전에 일단 음악가 살리에리에 대해 간단하게 알아보자(모차르트는 소개가 필요 없으니 생략).  안토니오 살리에리(Antonio Salieri, 1750~1825)는 이탈리아 태생이며 어린 시절에 부모를 잃고 고생했지만 음악에 대한 열정과 재능을 인정받아서 10대 후반에 오스트리아 빈의 음악계에 데뷔했다. 1774년에는 오스트리아 황실의 궁정음악가가 된 후 오페라 작곡가로 본격 이름을 날렸으며 1788년에는 궁정악장 자리에 올라서 죽기 직전까지 이 자리를 유지했다. 

살리에리의 초상화

 

살리에리는 생전에 빈과 독일 최고의 인기 오페라 작곡가였으며 당대에는 모차르트보다도 명성이 높았다. 모차르트가 활동할 당시 살리에리는 빈 오페라의 정점에 있었고 모차르트는 일종의 도전자 위치에 있었다. 살리에리의 오페라들은 독일을 넘어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도 큰 성공을 거두었다. 다만 19세기가 도래하면서 고전파 양식의 오페라의 유행이 지나자 1804년에 오페라계에서 은퇴했으며 이후에는 종교음악을 많이 작곡했다. 

살리에리는 평생 37편의 오페라를 썼는데, 대부분이 이탈리아어로 된 정가극(오페라 세리아)과 희가극(오페라 부파)이다.  그 외에 독일어 오페라(징슈필)나  프랑스 극단의 의뢰를 받아서 프랑스어로 작곡한 오페라가 몇 곡 있다. 살리에리는 이탈리아 출신이지만 주로 오스트리아에서 활동했기 때문에 글룩을 필두로 독일 지역에서 유행했던 소위 신경향 오페라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래서 살리에리의 오페라는 당시 이탈리아 오페라 아리아처럼 화려하고 기교가 넘치는 대신 좀더 서정적이고 감정 표현이 충실하다. 대표적인 작품으로 정가극 '오르무스의 왕 아주르'(Axur, re d'Ormus), '페르시아의 여왕 팔미라'(Palmira, regina di Persia), 희가극 '치프라'(La Cifra), '팔스타프'(Falstaff) 등이 있다.

치프라 2막의 아리아 E voi da buon marito(그리고 당신은 좋은 남편이죠) - 세실리아 바르톨리

한편 살리에리는 훌륭한 음악선생이기도 했다. 베토벤, 슈베르트, 리스트를 비롯해서 훔멜, 마이어베어와 같은 쟁쟁한 작곡가들을 지도했으며 가난한 작곡가 지망생들에게 경제적 혜택이나 일자리를 주선해주는 등 후진 양성에도 큰 역할을 했다.  심지어 자신과 앙숙이었던 모차르트의 아들 프란츠 사버 볼프강 모차르트도 잠시 가르친 적이 있다.  

2. 살리에리가 모차르트를 죽였다는 소문 

 

이처럼 살리에리는 당대에는 최고의 오페라 작곡가였고 대인배 기질이 넘치는 음악선생이었지만 오늘날 살리에리가 유명해진 것은 안타깝게도 그의 작품이나 음악교육이 아니라 모차르트와의 악연 때문이다. 

19세기 초, 1791년에 모차르트가 35살로 요절한 후 대략  10여년이 지난 후부터 살리에리가 모차르트를 독살했다는 괴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정확한 소문의 진원지는 알 수 없지만  연구가들은 모차르트의 인기가 본격적으로 높아지면서 그와 관련된 각종 일화들이 발굴되거나 생산되던 시점에서 이 소문이 돌기 시작한 것에 주목한다. 그의 이른 죽음을 안타까워한 모차르트 팬들이 음모론 차원에서 제기한 독살설이 확대재생산 되면서 퍼져나갔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한편 몇몇 연구가들은 이 소문이 당시 비인 음악계의 갈등으로 인해 생겨난 것으로 보기도 한다. 비인에서는 19세기 초부터 민족주의의 영향으로 기존 이탈리아 양식의 고전파 오페라를 배격하고 독일어를 사용하는 독일식 오페라를 추구하는 경향이 생겼는데, 모차르트 독살설은 바로 살리에리로 대표되는 기존 양식의 오페라 작곡가와 독일식 오페라를 주창하는 젊은 작곡가들(대표적인 인물이 카를 마리아 폰 베버이다) 사이의 갈등으로 인해 생겨났다는 것이다. 즉, 젊은 작곡가들이 살리에리와 같은 기성 작곡가들을 공격하기 위해 모차르트 독살설을 만들어서 퍼뜨렸다는 것이다.

 

누가 어떤 이유로 이 소문을 만들었건 모차르트의 높아지는 인기와 비례해서 이 소문도 유명해지면서 독일어권 밖으로도 퍼져나갔다. 소문이라는게 대체로 근거가 없을수록  자극적인 내용이 더 많이 추가되는 경향이 있는데 이 소문도 점점 이야기가 확대되면서 살리에리가 모차르트의 재능을 질투했다거나 모차르트의 곡을 훔쳐서 발표했다는 주장들이 달라붙었다. 

 

독살설과 관련된 소문 중 가장 엽기적이고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던 것은 모차르트의 진혼곡과 관련된 이야기이다. 모차르트가 생전에 마지막으로 작곡하고 있던 곡이 바로 KV 626의 진혼곡이었는데 다들 아시다시피 이 곡은 모차르트의 죽음으로 인해 결국 미완성으로 끝났다. 그런데 소문에 의하면 모차르트에게 이 진혼곡을 의뢰한 사람이 바로 살리에리이고 그가 모차르트를 독살한 후 모차르트가 작곡한 진혼곡을 자신의 곡으로 포장해서 모차르트의 장례식때 연주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이게 사실이라면 살리에리는 인자한 스승의 가면을 쓴 희대의 사이코패스였다는 건데......ㄷㄷㄷ

 

이 소문의 파급력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가 있다. 1830년 러시아의 알렉산드르 푸시킨은 '모차르트와 살리에리'라는 희곡을 썼는데 소문을 그대로 믿었던 푸시킨은 이 희곡에서 살리에리를 모차르트에 대한 열등감에 시달리다가 결국 그를 독살하는 인물로 묘사한다. 오늘날까지 온존하는 '모차르트를 시기질투하는 살리에리'의 이미지는 바로 이 희곡에서 형성된 것이다.  1898년에 림스키코르사코프는 이 희곡을 바탕으로 오페라를 만들었는데, 이 때가 푸시킨이  희곡을 쓴지 70년 가까이 지난 시기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질투하는 살리에리의 이미지는 푸시킨 이후에 그대로 고착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오페라 '모차르트와 살리에리' 초연 장면 - 공연시간 40분 내외의 짧은 오페라이다


3. 모차르트 독살설을 접한 베토벤 

살리에리 본인도 당연히 이런 소문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생전의 살리에리는 이와 관련된 언급을 가급적 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괜히 대응을 해봐야 오히려 의혹만 더 키운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일 것이다. 겪어본 사람은 알겠지만 음모론에 빠진 사람은 설득하기가 매우 어렵다. 아무리 아니라고 설명하고 반박 증거를 내밀어도 틀렸다는 걸 인정하지 않고 자기 좋을 대로만 생각한다. 살리에리는 모차르트가 사망한 후 34년을 더 살았는데, 말년에 치매로 정신 병원에 입원했을 때 모차르트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밝히고 참회하라고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시달렸다.

 

베토벤이 말년에 귀가 완전히 들리지 않게 되었을 때 필답으로 적은 기록에 이 시기의 살리에리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사람들이 베토벤에게 살리에리에 대한 소문을 전해줬는데, 그가 정신병원에서 종종 '내가 모차르트를 죽였다!'고 외쳤으며  죽기 직전에 자신의 주치의에게 자신이 모차르트를 죽였다고 고백했다는 것이다. 살리에리에게 작곡을 배웠던 베토벤은 이 이야기를 듣고 꽤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욕망을 주셨으면 재능도 주셨어야지!


그런데 베토벤의 제자였던 피아니스트겸 작곡가 이그나츠 모셀레스(1794~1870)가 자신이 소시적에 살리에리에게 들었던 좀 다른 이야기를 베토벤에게 전해주었다. 모셀레스도 잠깐 살리에리에게 배운 적이 있었는데 당시 살리에리는 모셀레스에게  '내가 모차르트를 매우 싫어한 것은 맞지만 나뿐만 아니라 오스트리아 궁정에 있는 모든 사람이 그를 싫어했다네. 내가 모차르트를 죽였다는건 정말 터무니 없는 이야기야.'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들은(정확하게는 읽은) 베토벤은 독살설의 진위여부는 내가 논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지만 자신은 살리에리 선생의 이야기를 믿는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베토벤의 이 일화를 보면 살리에리가 사망했을 당시의 분위기를 대충 파악할 수 있는데, 살리에리를 존경했던 베토벤조차 진위여부에 대한 판단을 미뤘을 정도로 모차르트 독살설은 많은 사람들에게 거의 기정사실처럼 받아들여지고 있었던 것이다. 앞서 말한 푸시킨의 희곡도 이런 분위기에서 씌어진 것.

그렇다면 정말로 살리에리는 모차르트를 죽였거나 적어도 그의 죽음과 관련이 있을까? 글이 길어져서 다음에 이어서 쓰도록 하겠다.  아래를 클릭하면 다음 글로 갈 수 있다. 

 

살리에리는 정말로 모차르트를 죽였을까? 진실을 파헤쳐보자(2)

지난 글에 이어서 계속해서 살리에리의 모차르트 독살설에 대해 파헤쳐 보도록 하자. 이 글을 읽기 전에 꼭 이전 글을 읽어보기 바란다. 모차르트와 살리에리 : 살리에리는 정말로 모차르트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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