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음악 관련 이슈

광복절에 KBS에서 방영된 푸치니의 나비부인 - 일본 사람들은 나비부인을 어떻게 생각할까?

파죨리 클래식 2024. 9. 27. 01:38
반응형

2024년 광복절에 있었던 이슈인데 블로그를 늦게 개설한 탓에 이제서야 글을 올리게 된 점을 양해 바란다. ㅠㅠ 꼭 다루고 싶었던 이슈였기 때문에 뒷북이라도 치자는 생각으로 글을 올린다. 

 

 2024년 8월 15일 0시가 되자 KBS에서 푸치니의 나비부인 공연 영상이 방영됐다. 하필 광복절에 일본을 배경으로 한 오페라가 방영되면서 상당한 논란이 벌어졌다. 

광복절 자정에 방영된 나비부인

논란이 불거지자 KBS는 "지난 6월 29일에 녹화된 공연을 7월 말에 방영할 예정이었으나 2024 파리 올림픽 중계로 인해 뒤로 밀리면서 광복절 새벽에 방송하게 되었다"라는 공식입장을 내 놓았는데 딱히 납득이 가는 해명은 아니다. 다만 이 글은 일본 사람들이 나비부인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에 대해 설명하는 것이 목적이며 KBS에 대한 비난은 이 글의 주제가 아니기 때문에 넘어가도록 한다. 

1. 나비부인은 자포네스크와 오리엔탈리즘이 투영된 작품이다

이 나비부인의 스토리는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까지 유럽에서 유행했던 자포네스크와 오리엔탈리즘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이 자포네스크와 오리엔탈리즘은 동양에 대한 신비로움과 궁금증을 반영한 일종의 이국취향이었는데 나비부인은 특히 자포네스크 측면에서 음악적으로나 대중적으로나 가장 성공한 작품 중 하나이다. 

나비부인이 초연된 시기는 조선이 완전히 국권침탈을 당하기 전이고 러일전쟁이 한창 벌어지고 있던 1904년이었다.  스토리는 (당연히) 푸치니가 직접 만든 것이 아니라 당시에 동명의 소설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데 소설 자체는 큰 인기를 끌지 못했지만 이 소설을 각색한 연극은 나름 당시 사람들의 관심을 받았으며 푸치니도 연극을 보고 나서 오페라를 작곡하기로 마음먹었다고 한다. 

하지만 1904년의 초연은 크게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실패한 이유에 대해 연극과 오페라의 스토리가 너무 비슷해서 그랬다는 이야기도 있고 당시 이탈리아에서 이국 취향이 한물 갔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어찌됐건 푸치니는 초연의 실패를 만회하기 위해 이후 공연에서 2막이었던 오페라를 3막으로 확장하면서 여주인공인 초초상을 좀더 중증의 순정파로 변신시켜서  초초상의 일편단심과 좌절이 좀더 부각되는 방향으로 바꾸었다. 이렇게 개정된 오페라는 초연의 실패를 딛고 큰 인기를 끌었고 나중에는 푸치니의 대표작중 하나가 되었다. 

2. 일본 사람들은 나비부인을 어떻게 생각할까?

사실 스토리만 보면 일본 사람들이 그리 좋아할만한 내용은 아니다. 미국 해군 장교의 일본 현지처가 된 초초상이 일편 단심 이 사람만 사랑하다가 배신당하고 자살하는 스토리이기 때문에 일본인 입장에서 딱히 국뽕을 느낄만한 부분도 없고 오히려 미국 남자가 일본 여자를 농락한다는 부분은 은근 기분 나쁠 수도 있다. 

하지만 실제 일본의 분위기는 이런 예상과 정반대이다. 오페라의 내용과 별도로 일본 사람들은 나비부인에 대해 유럽에 일본을 본격적으로 알린 작품이라는 이유로 굉장히 높게 평가하고 있다. 이렇게 생각하는 배경에는 일본은 진작에 탈아입구(脫亞入歐)를 한 나라이기 때문에 이 작품 전반에 흐르는 오리엔탈리즘은 자신들과 별로 관련이 없다고 생각하는 분위기가 자리잡고 있다.  물론 나비부인 전반에 나타나는 성차별과 인종차별적인 요소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다수의 일본 사람들은 '그 시절에 이 오페라만 성차별 인종차별을 한게 아니잖아?', '어쨌거나 이 오페라 덕에 일본이 유럽에 잘 알려졌잖아?' 라는 식으로 반박하면서 딱히 비판에 귀기울이지 않는다. 

 

푸치니의 명성과 뛰어난 음악 덕분에 오페라가 뜨면서 일본에 대한 관심도 같이 뜬건 사실이다.  비교차원에서 예를 들자면 1897년에 오스트리아의 작곡가 요제프 바이어가 청일전쟁기의 조선을 무대로 한 발레극 코레아의 신부(Die Braut von Korea)를 작곡했는데  초연 이후 곡의 존재조차 알려지지 않았다가  2003년에 악보가 발견되었으며 2022년에 한국에서 공연되었다. 문제는 곡이 시원찮다보니 재발견해서 이루어진 공연조차 별로 이슈가 되지 못했다는 것. ㅠㅠ 따라서 일본 입장에서 푸치니같은 대작곡가가 일본을 다루었다는 것은 분명 환영할만한 일이다. 


심지어 이 오페라의 배경인 나가사키에는 초초상 역으로 공연한 일본 소프라노 미우라 타마키(三浦環, 1884-1946)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미우라 타마키는 동양인 최초로 초초상 역을 맡은 소프라노이며 초초상 역으로만 2000번 가까이 출연한 기록을 갖고 있다. 목소리를 직접 들어보지는 못했지만 2000번 가까이 출연했다면 정말 훌륭한 초초상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나가사키에 있는 일본 소프라노 미우라 타마키의 동상



현재 일본의 소프라노들에게 이 초초상역은 일종의 통과의례인데, 일본에서는 이 배역을 얼마나 잘 소화하느냐가 소프라노를 평가하는 굉장히 중요한 기준이기 때문이다. 이 초초상역을 제대로 소화해야 인정을 받고 유명세를 탈 수 있다. 

오페라 뿐만 아니라 일본 문화 전반에도 나비 부인은 많이 활용되고 있다. 단적인 예로 싱크로나이즈드 스위밍이나 피규어 스케이팅처럼 배경 음악이 깔리는 스포츠 종목에서는 나비부인의 음악이 자주 사용된다. 김연아 선수의 라이벌이었던 아사다 마오도 나비부인의 대표적인 아리아 '어떤 개인 날'을 배경음악으로 사용한 적이 있다. 

 

*****

이처럼 나비부인은 내용과 별개로 일본 사람들에게  나름의 국뽕을 일으키는 작품이다. 따라서 개인적인 관점에서는 KBS가 하필 광복절 자정에 나비부인을 방영한 것은 설령 오비이락(烏飛梨落)일지라도 충분히 오해를 살만한 해프닝이었다고 결론내리고 싶다. 다만 특별한 근거가 없는 한 굳이 정치적으로 확대해석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