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리아나 아브제예바(Yulianna Avdeeva)는 1985년 러시아에서 태어난 피아니스트로 5살때 피아노를 처음 시작했으며 이후 스위스로 건너가 취리히 예술대학에서 수학했다. 2010년 쇼팽 콩쿠르 우승 이후에는 고국인 러시아를 떠나 유럽과 미국 등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자 러시아를 강력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아브제예바는 클래식 팬들에게는 나름 익숙하지만 대중들에게 잘 알려진 연주자는 아니다. 그녀가 2010년 쇼팽 콩쿠르 우승자라는 걸 생각해보면 좀 의외인데 이제부터 그 이유를 알아보자.
1. 논란이 많았던 2010년 쇼팽 콩쿠르
아브제예바는 2010년 쇼팽 콩쿠르의 우승자이며 마르타 아르헤리치 이후 45년만의 여자 우승자이다. 야마하 피아노를 사용한 최초의 우승자라는 타이틀도 갖고 있다(다만 우승 이후에는 스타인웨이를 사용하고 있다).
이 정도면 분명 영광스러워야 할텐데 문제는 이 분이 우승 당시 과연 우승 자격이 있는지에 대한 논란이 엄청나게 많았다는 것이다. 예선 때부터 기술적인 완성도에 대한 논란이 불거졌음에도 어찌어찌 결선까지 올라왔는데 그것만 해도 놀랍다는 반응이 많았다. 어려운 부분에서 실수하는 거야 다른 연주자들에게도 자주 발생하는 일이라 그렇다 치지만 크게 어렵지 않은 부분에서도 엇나가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
결선에서 쇼팽의 피아노협주곡 1번을 연주할 때도 역시나 미스터치의 향연을 벌이면서 음악에 몰입을 방해하는 상황이 자주 벌어졌다. 아무도 그녀를 우승자로 생각하지 않았는데 최종 발표 결과 덜컥 우승자로 선정되었다. ㄷㄷㄷ 이로 인해 각종 논란이 불거졌는데, 2위를 차지한 잉골프 분더가 쇼팽 콩쿠르 재수생이라 불이익을 주었다던가 3위를 차지한 다닐 트리포노프가 여러 콩쿨에 출전했기 때문에 우승을 주지 않았다던가, 아브제예바를 가르쳤던 중국 출신 심사위원이 우승을 밀어붙였다던가 등등의 확인되지 않은 루머가 난무했다. 아래 연주를 들어보고 직접 판단해보자.
이로 인해 아브제예바는 우승 자체보다 우승 논란으로 더 유명한 피아니스트가 되었으며 이런 꼬리표는 14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다.
물론 아브제예바를 옹호하는 입장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아브제예바 특유의 서정적이고 우아한 음색과 차분하고 정돈된 표현력이 쇼팽의 곡과 딱 맞아 떨어지기 때문에 기술적인 약점이 있더라도 우승자격이 충분다는 주장이 있었다. 또 아브제예바의 연주 논란과 별도로 당시 2위와 3위를 차지한 연주자의 결선 연주가 우승에 걸맞는 수준은 아니었다는 평가도 있었다. 특히 3위를 차지한 다닐 트리포노프의 결선 연주는 예선에서 보여준 엄청난 역량이 제대로 드러나지 않았다는 평을 받았다.
쇼팽 콩쿠르 주최측은 순위를 정하는데 어떤 농간도 개입하지 않았으며 아브제예바가 분명한 우승자라고 못박으면서 이런 논란을 일축했다. 당연한 이야기이겠지만 피아노 분야에서 최고의 권위를 갖는 쇼팽 콩쿠르가 아무에게나 우승을 수여할 리는 없다. 쇼팽 콩쿠르가 기술적인 완성도보다는 음악적인 원숙함을 더 중요하게 평가하는 자체 심사기준을 갖고 있기 때문에 아브제예바가 우승했다고 볼 수 있다. 또 아브제예바가 쇼팽 콩쿠르 외에도 여러 콩쿠르에서 입상한 경력이 있다는 것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한편으로 결선 연주에서 무대 조명이 갑자기 꺼지는 사고가 발생했는데(위 영상에서 13분부터 나온다) 이 때에 침착하게 연주를 이어가는 모습으로 화제가 되었다. 혹자는 조명이 꺼졌을 때의 연주가 더 훌륭했다는 약간 뼈가 있는 농담을 하기도 했다.
2. 쇼팽 콩쿠르 이후
아브제예바 본인도 마음 고생을 했는지 쇼팽 콩쿠르 깜작 우승 이후 한동안 공식적인 행보를 보이지 않았으며 이로 인해 우승 이후 묻혀진 연주자라는 오해를 받기도 했다. 2위와 3위를 차지한 잉골프 분더와 다닐 트리포노프가 우승 직후부터 연주회와 음반 발매 등으로 화려한 행보를 보인 것과 대조된다. 물론 그녀가 묻혔다는것은 어디까지나 오해이며 시간이 좀 지난 후 본격적으로 연주활동을 시작했고 한국에도 여러 번 내한 공연을 했다. 유튜브에도 그녀의 공연이나 연주 영상이 많이 올라와 있다.
2024년 현재의 관점에서 그녀를 평가하자면 '우승 논란 때문에 부당하게 저평가되어 있는 연주자'라고 할 수 있다. 콩쿠르 당시 불거졌던 기술적은 완성도 논란도 현재에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유튜브에 올라온 그녀의 연주 영상을 보면 다른건 몰라도 기교 문제로 몰입을 방해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
이분의 연주 스타일은 이전 글에서 소개한 발렌티나 리시차나 동년배의 유자 왕 등과는 완전히 대척점에 있다고 볼 수 있는데, 리시차나 왕처럼 화려한 기교와 강렬한 에너지를 발산하는 스타일과는 거리가 먼, 상당히 서정적이고 사색적인 음향을 들려주고 있다. 아브제예바의 이런 스타일은 특히 슈베르트나 슈만과 같은 작곡가들의 곡에서 진가를 발휘하고 있으며 바흐나 모차르트와 같은 바로크와 고전기의 음악과도 나름 아울린다. 어렵고 기교적인 패시지에서는 나름의 스타일이 있는데 다른 연주자들처럼 기교를 과시하기보다는 물 흐르듯 편안하게 들리는 연주를 추구한다. 그래서 그녀의 연주는 화려한 기교의 향연이 펼쳐지지 않는 대신 어떤 곡이라도 긴장을 풀고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아브제예바는 스타일상으로는 분명 호불호가 갈릴 수 있지만 결코 기량이나 음악성이 부족한 연주자는 아니다. 강력한 타건과 박력있는 연주로 청중들을 열광시키 대신 우아함과 서정미를 통해 다른 방향으로 청중들을 감동시킬 수 있는 연주자라고 평가하고 싶다.
실용적인 관점에서 아브제예바의 장점이 하나 더 있는데 쇼팽 콩쿠르 우승자임에도 불구하고 공연 티켓 가격이 상당히 저렴하다는 것이다. 2023년에도 내한공연을 했는데 상당히 혜자스러운 티켓 가격에 놀랐던 기억이 난다. 아쉽게 공연 당일에 스케줄이 있어서 가보지 못했는데 후에 그녀가 또 내한한다면 꼭 가 볼 생각이다.
3. 음반
아브제예바는 쇼팽 콩쿠르 우승 이후 현재까지 총 4장의 음반을 발매했는데 모두 마이너 레이블에서 발매된 것이다. 그라모폰에서 발매된 음반도 있는데 단독 연주가 아니라 실내악 음반이다.
3-1 Avdeeva - Schubert • Prokofiev • Chopin(2014)
쇼팽과 슈베르트의 연주는 훌륭한 반면 역시나 프로코피에프는 그녀의 스타일과 좀 맞지 않는 것 같다. 슈베르트의 3개의 피아노 소품은 그녀가 연주회에서 자주 연주하는 곡이며 그런 만큼 정말 훌륭한 연주를 들려준다. 굳이 아브제예바의 음반을 사겠다면 슈베르트곡 때문에 이 음반을 권하고 싶다.
3-2 Avdeeva - Chopin • Mozart • Liszt(2016)
리스트 연주는 호불호가 갈릴 수 있지만 나름 설득력이 있으며 쇼팽과 모차르트의 연주는 꽤 훌륭하다.
3-3 Johann Sebastian Bach(2017)
영국 모음곡 2번과 프랑스 풍의 서곡 등이 수록되어 있는데 그녀의 연주 스타일이 바로크 음악과도 나름 어울린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만 굳이 구매하라고 권하고 싶지는 않다.
3-4 Resilience(2023)
바흐 음반을 발매한지 6년만에 이전에 음반계약을 맺었던 Mirare가 아니라 Penatone에서 발매한 음반이다. 수록된 곡을 살펴보면 프로코피에프의 소나타 8번 외에는 모두 자주 연주되지 않는 생소한 곡이다. 솔직히 객관적으로 추천할만한 연주인지는 잘 모르겠는데 대중적인 인기보다는 자신만의 음악세계를 구축하려는 의지가 엿보이는 음반이라는 점에서 점수를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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